
(뉴스핏 = 김수진 기자)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2026년 3월 19일부터 6월 14일까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과의 공동기획전 ‘불연속의 접점들’을 개최한다. ‘불연속의 접점들’은 백남준아트센터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의 오랜 협력 속에서 만들어진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예술과 크로아티아 미디어 아트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기치 못한 접점과 공명을 만들어 왔는지를 조명한다.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에서 형성된 예술 실천이 교차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다.
전시는 크로아티아 미디어 아트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가며, 백남준과 크로아티아 미디어 아트가 공유하는 지점을 세 시기로 나누어 보여준다. 전시는 먼저 1960-70년에 가장 활발했던 국제적 미술 운동 ‘뉴 텐던시(새 경향)’에 주목한다. 뉴 텐던시는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미술 운동으로, 국내 관람객에게 처음 소개된다. 다음으로 실험적 비디오 실천을 통해 전개된 크로아티아 1970-80년대의 비디오를 소개한다. 이 시기에는 비디오 실험과 신체의 탐구를 통해 매체와 인간 감각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당시 최신 기술을 활용한 크로아티아 동시대 작가들을 조명한다. 초기의 우연하고 불연속적이던 접점은 점차 지속적인 예술적 관계와 네트워크로 확장된다. 평행선에서의 출발과 직접적인 교류, 다음 세대로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전시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이어진 예술적 연결을 따라간다.
뉴 텐던시 (1960-70년대): 기술과 예술의 만남
전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국제적 미술 운동 뉴 텐던시에서 출발한다. 1954년 설립된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은 이 운동의 중심 기관으로, 1960년대 초부터 다섯 차례의 전시를 개최하며, 전통 미술의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매체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뉴 텐던시는 예술을 하나의 연구 행위로 규정하고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했으며, 기술 발전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예술의 방법론으로 도입함으로써 예술가, 이론가, 기술자 간의 국제 협업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오늘날 디지털 기반 예술 실천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운동에 참여한 주요 작가인 블라디미르 보나치치, 이반 피첼리, 알렉산다르 스르네츠, 콜로만 노바크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문제의식과 미학적 성과를 조명한다.
비디오 실험과 신체 탐구(1970–80년대): 매체와 몸의 관계
크로아티아 미디어 아트의 흐름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실험적 비디오 실천을 통해 전개된다. 카탈린 라딕, 고란 크르불랴크, 이반 라디슬라브 갈레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달리보르 마르티니스, 산야 이베코비치 등의 작가들은 비디오와 퍼포먼스, 그리고 신체와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했으며, 비디오의 기술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영상 매체가 새로운 사유와 비판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리듬 2’는 약물로 신체 반응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상황 속에서 신체와 의식의 분리를 드러내며, 통제와 상실 사이의 긴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초기 퍼포먼스 영상이다.
최신 기술 기반 미디어아트(1990–2000년대 이후): 변화하는 작품과 관객
1990년대는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전쟁과 경제 변화로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시기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크로아티아 작가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 네덜란드 등에서 수학하며, 최신 기술을 수용하고 아날로그와 최신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화면 경험을 제시했다. 이들은 기술과 예술,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크로아티아 미디어 아트의 국제적 확장에 기여했다. 특히, 단 오키는 아날로그 필름 영상과 최신 아미가 컴퓨터를 활용한 그래픽 이미지를 결합하여 ‘출발의 몸’(1991/2026)을 제작했고, 산드라 스테를레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CD-ROM 기반 작업 ‘캐릭터들’(1998)을 통해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선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이후 2000년대 크로아티아의 동시대 미술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완결된 결과물로 고정되기보다, 시간과 데이터, 상호 작용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로 나타나며, 관객과 작품 사이의 관계 또한 지속적으로 확장된다.
개막 행사와 전시 연계 상영회 개최
전시 개막식에서는 크로아티아 현대 음악의 거장 밀코 켈레멘과 작곡가 전현석의 작품을 연주하는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밀코 켈레멘은 백남준과 교류했던 작곡가이자 크로아티아의 현대 음악계를 이끈 인물로, 국제 현대 음악 축제인 자그레브 음악 비엔날레를 창설하며, 동시대 음악의 흐름을 확장한 바 있다. 이번 연주회에는 그의 초기 대표작 ‘콘체르탄테 즉흥곡’(1955)과 ‘서프라이즈’(1967)가 무대에 오르며, 이와 함께 전현석의 ‘확산하는 점들’(2017)도 프로그램에 포함된다. 이 작품은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1958-1962)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탄생한 음악이 한 무대에서 교차하는 이번 공연은 전시가 보여주는 ‘불연속의 접점들’의 개념을 음악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연주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맡는다. 1993년 ‘실내악단 화음’으로 출발한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그림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음악 문화를 제시해 왔으며, 창작 음악의 가치 확산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번 개막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전시 개막 주말에는 연계 상영회를 개최한다. 상영회는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크로아티아 실험 영화와 비디오 작품을 통해 영상 매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3회에 걸쳐 보여준다. 특히 이번 상영회에는 ‘불연속의 접점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초기 비디오와 최근 비디오가 포함되어,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업을 더 넓은 맥락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각 비디오는 비디오 테이프라는 매체의 물질성을 드러내거나, 카메라와 기록 장치를 실험하며,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상영회 후에는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인 단 오키를 모더레이터로 산드라 스테를레, 고란 트르불랴크, 이반 마루시치 클리프 등 참여 작가들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참여자는 서로 다른 시대와 방식의 비디오를 통해 영상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한 감상 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